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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 영화 <크리에이터>(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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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지평 2023. 10. 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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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영화 <크리에이터>(2023, 가렛 에드워즈 연출)를 보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었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영화는 가까운 미래, AI 로봇 대 인간의 갈등을 다룬다. 가까이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멀게는 구약성서의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조물과 조물주의 갈등 서사는 인류의 오랜 스토리텔링 소재이자 신화의 원천이다. 이러한 서사의 구성과 결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공통되게 함축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피조물은 조물주에게서 독립할 수 있는가?

 

영화 <크리에이터> (사진 출처_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속 주인공 조슈아는 인간형 AI 로봇 설계자이자 마스터인 마야와 사랑에 빠진다. 마야는 조슈아의 아이를 배지만, 조슈아는 노마드의 공격으로 미야와 아이를 모두 잃는다. 그리고 조슈아 앞에 아이의 모습을 한 AI 로봇 알피가 나타난다. 알피는 마야가 설계한 궁극의 AI 로봇으로 AI 로봇을 학살하는 노마드를 파괴하고 로봇 대 인간의 갈등을 끝낸다. 영화는 서구 대 비서구의 대결 구도에서 서구를 선, 비서구를 악으로 간주하는 클리셰를 반대로 전복하여, 미국과 서구를 인정머리 없는 악당이자 인간중심주의자들로, 아시아와 비서구를 영적이고 착해 너무나 인간적인 로봇인간공동체의자들로 설정한다. 로봇인간공동체주의자들을 학살하는 노마드가 파괴되는 결말은 로봇과 인간이 평화롭게 상생하는 삶을 이상화한다. 다만 그 결말은 비서구 지역에 국한된 제한적 이상화다. 2의 노마드는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영화 속 설정처럼 서구 대 비서구의 대결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SF 영화의 미덕은 과거나 미래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의 교훈을 통찰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기계화, 기계의 인간화는 주체와 객체의 등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결코 동등한 개념일 수 없다. 인간은 당연히 주체이고, 기계는 반드시 객체일 수밖에 없다면 인간의 기계화는 인간의 확장이며, 기계의 인간화는 기계의 소외다. 기계를 인간형 로봇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는 기계의 모습을 한 로봇을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인간중심주의가 도사린다. 특히 고도의 AI가 탑재된 로봇일수록 인간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은, 기계가 인간다워지려면 먼저 기계성을 탈피하고 인간성을 갖춰야 한다는 관념을 배태한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기계는 로봇팔이어도 자연스럽지만, 서빙하는 기계는 얼굴과 몸, 그리고 인간을 닮은 목소리를 흉내 낸다. 인간의 일상 가까이에서 인간의 행위를 대체하는 로봇일수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형 로봇에게서 인간의 얼굴을 보려 한다. 로봇 그 자체의 금속성과 기계적 물질성을 지우거나 숨기려 한다. 결국 기계의 인간화는 인간의 기계화에 비해 소외되고 타자화된 사이버네틱스다.

 

인간중심주의와 로봇인간공동체주의의, 기계의 인간화와 인간의 기계화에 숨겨진 이념과 철학은 비단 SF 영화 속 세계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념의 갈등은 전쟁과 테러를 낳고 철학은 정치와 사회를 조직한다. SF 영화의 재미 요소로서 화려한 전투 장면과 스펙터클에만 함몰하여 이 영화를 보았다면 미국과 서구의 지난 제국주의적 면모를 영화적으로 성찰하고 반성하는 서사 정도로 흥미롭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크리에이터><프랑켄슈타인><터미네이터>, 그리고 <매트릭스> 시리즈가 우리에게 던진 과학기술과 종교의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성찰과 대안을 총체적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불편한 문제작이다.

 

내가 느낀 그 불편함은 포스트휴머니즘, 사이버네틱스 논쟁을 여전히 사랑과 가족 서사로 투박하게 건들고 매듭지으려 했다는 점이다. 후속편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영웅은 떠나고 로봇만 살아남은 세상에서 역사는 종말을 맞이한다. 역사가 끝나고 나면 다음 세상은 그저 현상 유지를 위한 복제 시스템만 작동할 것이다. 영화 도입부, AILA에 핵을 터트리고 그로 인해 미국과 서구 세계는 AI를 파괴하고자 했다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나는 생각했다, 이 영화는 역사가 종말을 맞이한 뒤의 후일담 이야기임을. 어떻게 인간의 역사가 끝나고 탈인간화된 세계가 펼쳐질지 그 끝과 시작을 담은 서시겠구나.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다시 물었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어쩌면 인간은 무언가를 창조할 때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창조를 멈추면 인간의 역사도 끝나는 게 아닐까? 신 역시 우리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AI 로봇 역시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려면 무엇을 할까? 영화는 그 답에서 출발하고 있다.

 

글 김우필 (명지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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