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文解力)’.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과거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문맹(文盲)’이라고 하였다. 최근 들어 의무교육의 시행으로 문맹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글을 읽고 이를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문해력이 중요해졌다. 각종 매체에서도 문해력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올해(2021년) 3월 교육방송(EBS)에서는 문해력과 관련된 〔당신의 문해력〕을 6부작으로 방영하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프로그램 방영 전에 성인을 대상으로 문해력의 수준을 테스트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풀도록 하였다. 다음은 그 문제 중의 하나이다.
상품 광고 중에는 소비자의 ( )을/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상품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드러내지 않는 ‘티저 광고’가 있다. 티저(teaser)는 ‘감질나게 하다. 애를 태우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tease에서 나온 말이다.
( )안에 들어갈 말로 적절한 것은? 답 : 호기심
주어진 지문을 꼼꼼하게 읽고 이해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성인 883명을 대상으로 한 성인 문해력 테스트 결과 11점(만점)은 0.5%였고, 2문제를 맞히지 못한 사람도 6%였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 중 50%에 해당하는 사람이 7문제 이상을 맞혔다. 필자는 그중 8문제를 맞혔다. 테스트에 제시된 문제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테스트에 참여한 사람의 50%에 해당하는 사람이 5문제 이상을 풀지 못하였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시행된 문해력 관련 설문조사도 흥미로웠다. ‘글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쓰는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2.6%의 응답자가 ‘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무려 87.9%의 응답자가 필요하다고 답변하였다. 물론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문해력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국민의 문해력 수준은 어떨까?
얼마 전 국가문해교육센터에서는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를 발표하였다. 18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문해능력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 능력 및 활용단계에 따라 4단계(수준 1 ~ 수준 4)로 구분하였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문해 능력이 부족하여 교육이 필요한 대상은 수준 1~3이다. 이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만 18세 이상의 성인 가운데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어려운 비문해 성인(수준 1)은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체 성인의 약 4.5%에 해당하는 국민이 기본적인 읽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공공 및 경제생활 등 복잡한 일상생활에 활용이 미흡한 수준까지 포함하면 약 889만 명이나 된다. 18~29세 연령의 경우도 4.6%가 문해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청소년들의 문해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EBS에서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문해력을 평가한 결과 중3의 적정수준에 미치지 못한 아이들의 비율이 27%였으며, 이 중 11%는 초등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었다. OECD의 ‘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보고서김나영, 「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교육정책포럼』 제338호, 교육정책네트워크, 2021. https://blog.naver.com/edpolicy/222496831847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 영역에서는 OECD의 37개 회원국 중 5위에 해당하지만,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역량을 측정하는 문항의 경우 OECD의 평균에 훨씬 못미치는 25.6%의 정답률을 보였다. 위의 두 사례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을 잘 설명해준다.
국민은 자신의 문해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설문조사가 최근에 발표되었다.「현대인의 과반수, “문해력 부족으로 업무상 어려움 느꼈다”」, 전자신문, 2021.09.14. https://www.etnews.com/20210914000045 설문조사의 결과 비교적 내용이 길고 전문용어가 많은 비즈니스 문서를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응답자가 절반(‘대부분 느낀다’ 6.3%, ‘종종 느낀다’ 44.5%)이 넘었다. 이 중 ‘자신의 문해력이 학창시절 보다 낮아졌다’고 보는 응답자는 무려 89%로 열 명 중 아홉 명이 문해력이 낮아졌다고 평가하였다. 그럼 왜 낮아졌을까. 제일 많은 답변은 ‘메신저, SNS활용으로 단조로워진 언어생활’(95.4%)었고, ‘독서 부족’(93%), ‘유튜브 영상 시청 증가’(82.1%), ‘장문의 글읽기가 힘듦’(67.7%), ‘한문공부 부족’(36.7%)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읽고 쓰는 기본적인 언어생활의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어 문해력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자에서 영상으로 정보 습득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문해력의 감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는 문해력은 둘째치고 문맹율이 굉장히 높았다. 공용 언어인 한문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언문 즉,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도 많지 않았다. 따라서 문해력을 논의할 수 있는 집단은 지식인 집단인 양반들이었다. 조선시대에 기본적으로 문해력은 양반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었지만 그렇지 못해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다.
글을 모르는 자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시끄러웠던 일이 있었다. 1633년 안동 선비 김령(金坽)은 상주로 과거를 보러 갔던 생질 김설(金偰)에게서 과거 시험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시험관은 김효건(金孝建), 참시관은 고성 현령인 최욱(崔煜), 유곡 찰방 이흥발(李興浡)이었다. 문제는 김효건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글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이흥발은 글을 외울 줄만 알고, 문리(文理)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최욱 역시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험을 주관하는 이들조차 글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시험의 결과를 어찌 믿을 수 있었겠는가.
(『계암일록(溪巖日錄)』 6)
‘영남의 제1인’으로 평가받던 김령의 눈에 세 사람의 학문이 못 미칠 수도 있었지만, 세 사람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특히 과거에 합격한 관리를 보고 글을 몰랐다고 평가하였으니 지나친 듯하다. 이흥발을 두고 문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는데, ‘문리의 이해’가 요즘으로 치면 문해력이다. 후세에 문해력이 부족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으니, 세 사람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조정의 관리들마저 글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일반 백성들의 상황은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당시에도 문해력이 부족한 경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의 선비에게 글을 제대로 이해하느냐는 자신의 평판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다. 이에 조선 선비들에게 글공부는 매우 중요하였다. 새해 첫날의 덕담도 공부하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안동 선비 류의목(柳懿睦)은 새해 첫날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갔는데, 덕담과 함께 꾸중을 들었다. 숙부들이 “형님이 살아 있을 때 네가 일찍이 글을 읽어 성공하기를 기대했는데, 끝내 먼저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네가 만일 이것을 알고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효도라 할 것이다. 중용에도 ‘뜻을 잇고 사업을 잇는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비단 살아계신 부모님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돌아가신 부모님도 아울러 가리켜 말한 것이니 잘 유념하여라”라고 격려하면서도, 류의목이 글 짓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꾸중하였다. 종이와 먹을 마련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글쓰기 연습을 하지 않았던 류의목에게 “무릇 글씨 쓰기는 손이 부드러울 때 익숙하게 연습해야 성취할 수 있다. 스무 살이 넘어가면 손이 뻣뻣해서 글을 쓸 수가 없고, 쓰더라도 잘 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하와일록(河窩日錄)』)
새해 첫날부터 글 짓는 공부 안하다고 혼났으니 류의목의 마음이 어땠을까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글을 짓고, 쓰는 일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읽고, 이해하고, 쓰는 과정을 두루 했다. 이는 자녀 교육에도 해당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자녀 교육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자식의 글공부를 위해서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금난수(琴蘭秀)는 막내아들의 글공부를 위해 『강목』을 베껴 써서 주었으며, 조선말의 학자인 남붕(南鵬)의 집안에서는 아들 남원모(南元模)가 직접 쓴 『천자문』을 가지고 그의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가며 공부하기도 하였다. 자녀 교육을 위해 직접 책을 베끼고, 대를 이어서 그 책을 가지고 공부하였으니 시대를 막론하고 자녀 교육에는 진심인 조선의 선비들이었다.
남붕의 증손자 진시가 6살 때 무더위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남붕은 어린 증손자를 감독하고 권면해서 공부를 방기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글씨 쓰기와 우리나라 현인들의 문자를 읽도록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손자의 글씨 쓰는 솜씨가 나아지자 자랑하고 싶어 했지만 그럴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돈 형의 생신에 선물로 손자의 글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6살 손자에게 ‘축수(祝壽)’를 쓰게 하니, 어린아이가 조그마한 손으로 붓을 쥐고 정성을 다해 베껴 썼다. 남붕은 어린아이가 쓴 글의 필획이 매우 굳세어 장래에 희망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흐뭇해하였다.(『해주일록(海洲日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앞서 남원모가 직접 쓴 『천자문』을 가지고 공부한 그의 손자 남진시이다. 아들이 직접 쓴 『천자문』을 가지고 공부하던 증손자의 글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남붕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남붕의 집안뿐만 아니라 조선의 양반 집에서는 읽고, 쓰는 교육이 이루어졌다. 요즘으로 치면 문해력 강화 교육이 이루어졌다. 글을 읽고, 짓고, 쓰는 과정을 통해 문해력을 증진시켰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교육의 대상은 점점 확대되었고, 여성에게 글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물론 조선시대 일부 양반 여성과 기생들이 한문을 읽고 쓸 줄 알았으나, 대다수 여성은 한문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한문을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었다. 이에 글을 익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공부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김대락(金大洛)은 『백하일기(白下日記)』에서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과 10여 년 전에 서울에 여학당이 세워지자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고 안동의 양반들이 탄식한 것과 비교하면 놀랄만한 진전이다. 김대락은 안동 내앞마을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한일병합 이후 이상룡과 함께 만주로 건너갔다. 간도에서 이주민들의 경제적 문제와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12년 만주의 긴 겨울밤이 시작되던 11월의 밤. 김대락은 떠나온 조선의 잘못된 교육풍습을 떠올린다. 조선은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심해 조상의 이름도 한자로 구별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태반이었는데, 김대락은 이를 탄식하였다. 조선은 여자들이 한문과 한글 두 가지를 다 잘 할 수 없어 여자들에게는 진서, 즉 한문이 아닌 한글만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집안의 여자들도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생각에 한문을 배우지 않았다.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았던 당시 조선의 풍습에 대해 김대락은 “남녀가 유별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지 문자를 아는지로 구별하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녀딸에게 중요한 글자 천자를 직접 써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손녀가 재주가 있어 가르침을 잘 기억하여 김대락을 기쁘게 하였다. 김대락은 한문이란 것이 글자를 안다고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문장 이해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낫 놓고 정(丁) 자도 모르는 꽉 막힌 지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당시 바뀐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한자가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이 손녀딸을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고, 실천에 옮겼다.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여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글을 이해하는 능력, 곧 문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요즘 문해력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독서인 『중용』에는 공부하는 방법으로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을 거론하였다. 즉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하고, 그 뒤에 독실하게 행하라는 것이다.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이 5가지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중용』의 글처럼 책을 읽는다면 문해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지 않을까.
문해력 하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며칠 전 추석을 앞두고 한학을 하시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몇 잔의 술이 오가고 난 뒤 선생님께서 노기 띤 목소리로 세태를 탄식하셨다. 요즘 신문을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너무 많아서 신문을 읽기 위해서는 사전이나 검색을 해야 할 정도라며 걱정을 하셨다. 줄임말이나 외래어가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다수 신문이 글자를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가득해진 현실이다. 문해력이 중요해진 만큼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 맹영일(단국대학교 글쓰기센터 초빙교수)
※ 이 글은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스토리테마파크>92호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을 확인하고 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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