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W. 아도르노와 M. 호르크하이머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설립했던 사회연구소IfS는 나치가 제국의회의 제1당이 된 이듬해인 1933년 4월,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부터 협력 관계를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사회연구소는 스위스를 거쳐 미국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 곧바로 망명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미국에 머물렀던 사회연구소의 주축 멤버들은 1949년에 이르러 귀환을 결심하고, 1950년 프랑크푸르트에 사회연구소를 재건한다. 폴커 바이스가 아도르노의『신극우주의의 양상』(문학과지성사, 2020)에 쓴 해제에 따르면, 연구소를 독일로 이전하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전쟁의 결말에서 드러났듯 유럽은 과거의 세계였다. 사회연구소의 소속 연구원들은 이제 서구 사회의 미래만이 아니라 사회연구소의 분석 대상 또한 앞으로 미국에 의해 결정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미국적 모델은 규격화된 상품생산, 대량소비, 문화산업의 발전을 강제했고, 이런 것들은 그들 사회이론의 중심을 이루는 영역들이었다. 이곳에서는 앞으로 유럽을 마찬가지로 지배하게 될 것들의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아도르노는 ‘미국이 뜨고, 유럽이 지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역사적 경향의 현현”이라고 평가했다.
아도르노와 사회연구소 소속원들이 구舊세계로 복귀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역설이 작용했다. 독일에는 총체적인 사회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시대의 잔여물, 즉 급변하는 “미국에서는 사라져버린 교양과 이상과 시민적 주체성, 한마디로 유럽 문화의 잔재가 생생하게 남아 있으리라는 희망”이 이들을 고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귀향의 이상이 도전받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후 독일에 옛 나치 세력이 모인 독일제국당DRP이 보란 듯이 창당되었고, 내분을 치른 독일제국당은 좀더 과격한 사회주의제국당SRP을 낳았다. 파시즘을 표방했던 이 당은 1953년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고 해산되었으나, 잔존했던 독일제국당은 1964년 모당을 깨고 독일민족민주당NPD을 새롭게 창당했다. 서독에 전후 최초로 일시적인 불황이 찾아왔던 1966년, 주의회 선거에서 독일민족민주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무섭게 성장하자,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졌던 강연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신극우주의의 양상』이다.
아도르노는 1967년에 행한 이 강의에서 극우가 생겨나는 몇 가지 조건을 밝히는 것과 함께, 극우 세력을 불려나가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위력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경제적 조건. 중산층과 노동 계급은 파산이나 불황과 같은 경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지키고 사회적 지위 하락을 막기 위해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찾아 결집한다. 나치 독일의 경우 유대인과 러시아가 적이었다.
둘째는 사회적 조건. 독일제국당 창당에서 보듯이 전후 독일에서 이루어진 미온적인 나치 청산이다. 광범위한 대중 동의에 기반했던 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돌입한 냉전 체제는 나치 청산을 흐지부지하게 처리했다. 이것이 훗날 극우가 나치 청산 과제를 가리켜 ‘죄의 숭배’라고 폄하하면서, “죄를 고백하는 일은 이제 그만”이라는 뻔뻔한 주장을 외치게 된 기반이 되었다. 이것의 일본 우익 버전이 ‘자학 사관 청산’이다.
셋째는 아도르노와 사회연구소가 파시즘을 연구하면서 공을 들였던 사회심리학적 조건으로, 아버지에 대한 복종을 강요받고 아울러 성적 억압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권위주의적 인격(성격)’을 내면화함으로써 수동적이고 ‘조종받기 쉬운 유형’의 인간이 된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특히 경제적 조건이 악화될 때나, 그로 인한 국가 위기를 민족의 멸절로 과대 포장하는 프로파간다에 쉽게 휘둘린다. 그 결과 자본의 집적(양극화)이라는 포화 아래서 “자신들에게 늘 잠재해 있는 계급 하락의 책임을 그 원인이 되는 장치에 묻는 대신, 자신들이 한때 지위를 누렸던 체제를 비판적으로 적대해왔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지식인, 좌파, 노동조합이 중산층으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그 나라와 그 시대의 극우 편향을 잴 수 있는 바로미터다.
아도르노의 강연록 『신극우주의의 양상』은 극우의 무이념 구조와 극우 지지자들에게서 매번 ‘권위주의적 인격’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오늘의 아버지는 그때의 아버지가 아니고, 아이들은 일찍부터 성에 눈뜬다. 조국ㆍ정의연(정의기억연대)ㆍ박원순 사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권위는 안에서부터 붕괴했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권위는 흔하고 저렴하게 되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를 잘 이용하면 누구나 권위가 될 수 있다(지식인과 전문가가 넷상에서 어떤 용어로 불리는지도 보라). 이제는 금지가 아니라, 욕망과 필요 혹은 이해득실의 즉각적 만족에 조종되는 현대인의 심리적 구조를 분석하는 증강된 사회심리학이 필요하다.
2010년에 발생한 유로화貨 위기와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사태 이후,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에서는 극우주의 운동이 거세졌다. 미국과 다를 것이라는 역설을 믿었던 사회연구소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또 그들이 떠나온 미국의 국민은 2016년 11월 9일, 백인 우월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선동해온 도널드 트럼프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트럼프는 유대인 혐오와 콧수염만 없는 히틀러가 아닌가? 대서양 양쪽에서 신극우주의의 양상이 현현하고 있는 중이다.
글 장정일(소설가)
원문 읽기(문학과지성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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