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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소수적 감성’을 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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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지평 2022. 7. 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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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bling” “overwhelming”. 캐시 박 홍 작가는 자신의 책 〈마이너 필링스〉(마티 펴냄)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겸손’과 ‘압도’라는 단어로 소감을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환대에 압도되었으며, ‘삶이 바뀌었다’는 독자의 후기를 읽고 나선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기를 안고 북토크를 찾은 젊은 여성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책에 인덱스를 빼곡하게 붙인 다른 이들처럼 그도 오래 기다린 만남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장마로 궂은 날씨에도 독자 100여 명이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 모여 캐시 박 홍을 만났다. 2008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캐시 박 홍은 1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서울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디지털화하고 카페도 정말 많아졌고요. 좋아했던 카페가 없어져서 아쉬웠지만. 서울 고유의 모습들은 여전한 것 같아요.” 남편, 어린 딸과 한국을 찾은 그는 이제 딸의 시선으로 한국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이후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개다리소반이나 청자, 유관순 벽화 등의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6월29일 캐시 박 홍은 오전과 오후, 각각 기자간담회와 북토크에 참석했다. ‘현장의 말’과 그의 책을 토대로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소수적 감성)’라는 화두를 짚었다.

 

 

작가 캐시 박 홍 씨. 시인이었던 그는 트럼프 당선과 딸 출산을 계기로 〈마이너 필링스〉를 쓰게 됐다.ⓒ김흥구

 

한국계 미국 이민자 2세대인 캐시 박 홍은 〈댄스 댄스 레볼루션〉(2007)을 포함해 시집 세 권을 낸 시인이자 럿거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다. 1965년 미국이 이민 금지를 풀자 그의 부모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의사, 기술자, 정비사 등 전문가만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아시아인은 모범 소수자’라는 허구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판타지가 시작된 계기다. “이미 의사인 사람들이 와서 의사를 하는 것을 두고 (성공이라고) 그렇게 말했다(〈마이너 필링스〉 중).” 아버지는 정비사로 훈련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해 펜실베이니아주로 보내졌다. 캐시 박 홍은 로스앤젤레스에 태어나 한인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이너 필링스〉는 그의 첫 자전적 에세이로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몸’ 안에 살면서 느끼는” 상반된 감정, 차별적 경험과 트라우마에 대해 다뤘다. 그는 지난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돌풍’이 이어졌다. 지난 연말 〈시사IN〉을 비롯해 각종 언론사와 서점이 꼽은 ‘2021년 올해의 책’에 〈마이너 필링스〉가 포함됐다.

 

2021년 3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열린 아시아계 증오범죄 규탄 시위.ⓒAP Photo

‘백인들을 위한 글을 쓰지 않겠다’

시인이었던 그가 에세이를 쓰게 된 것은 스스로에게도 모험이었다. “저는 아주 실험적인 시를 씁니다. 시를 쓸 때는 가상의 캐릭터를 등장시키기 때문에 저 자신이 드러나지 않아요. 하지만 에세이는 제 정체성, 제 경험에 대해 쓰는 것이어서 저의 취약한 면이 드러날 수 있었고 그래서 제게 도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몸만 성인이고 정신은 어린애’인 대통령이 선출되자 그는 글을 통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아시아 혐오가 심해진 시기에 딸을 낳았습니다. 결국 에세이를 쓰기로 한 건 제 딸을 위한 일이기도 했어요. 시보다 더 직설적인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2020년 10월 예일 대학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아시아계 미국인(Asian American)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쓰는 일을 피해왔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백인들이 아니라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백인들을 위한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말은 자신의 글을 거듭 감시하고 경계하며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비백인 인종들은 “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욕망이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미량으로 솔솔 새어나오던 인종주의는 야비”해서 저자 역시 “인종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너무나 인종스럽다고 비웃게” 됐다. 자본주의처럼 좀 더 묵직한 주제와 엮지 않는 한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주제는 너무 불충분하고 부족해 보였다. 만약 인종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항상 품위 있게 행동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백인들이 작가의 인종화된 체험에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작가는 반대로 했다. 이 책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책의 영문판 표지는 전면을 가득채운 ‘MINOR FEELINGS’라는 붉은 활자가 불꽃처럼 타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예속해온 백인우월주의를 고발하며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아메리칸드림)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라고 외친다. “(백인이라는) 보편성을 파괴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한다.

유색인종들이 인종차별적 언어에 대한 감정을 말하면 백인들은 과잉 반응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도가 지나치다’고 대응한다. 이 말은 유색인종들을 굴복하게 만든다. 이들이 “본 것, 들은 것이 다 확실한데도 자신의 현실을 남에게 폄하당하는 경험을 너무 여러 차례 겪다 보니 화자 스스로 자기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타인들이 나를 잘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 못한다. 이 경험은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이라는 소수적 감정(마이너 필링스)”을 일으킨다. 차별과 혐오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현재성을 가지고 공감을 이끌어낸 이유다.

한국 독자들의 반응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캐시 박 홍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가 책에서 말한 마이너 필링스는 억압받고 차별받는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쉽게 털어놓지 못해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이 책에 공감했습니다. 제 책이 마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거울 같았다는 독자평이 무척 인상에 남았어요.”

인종차별 같은 일반적인 용어 대신 ‘마이너 필링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를 묻자 그는 ‘감정’과 ‘내면의 감각’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피해자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아시아인들을 향한 기대와 다른) 이상한 사람 같은 내 모습도 에피소드로 넣었어요”라고 말했다.

〈마이너 필링스〉의 첫 에피소드는 작가가 자신의 안면에 틱 장애가 있다는 불안을 느끼며 한국계 미국인 심리치료사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이상한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계속 상담을 받고 싶었던 자신과 달리 심리치료사는 그를 환자로 받아주지 않는다. 줄기차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휴대전화 번호를 달라고 애걸하며 수시로 전화를 건다. 같은 한국계 이민자인 그와 ‘정(情)’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모든 시도가 좌절된다. 캐시 박 홍은 치료사 평가 사이트에 악평을 쓰다가 기어코 한국인 전체에 대한 화풀이까지 적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뻣뻣하다! 냉정하다! 정신건강 분야 직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연대로 ‘조건부 실존’에서 벗어나야

자전적 에세이를 이 에피소드로 연 이유를 물었다. “터무니없는 일화죠(웃음). 하지만 그 장면이 제 안의 감정적인 충돌이나 누군가에게 숨기고 싶은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한국계 미국인들이 겪는 트라우마 같은 정신건강 문제는 잘 조명되지 않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에피소드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소수자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근 한국계 이민자들을 다룬 작품 〈미나리〉 〈파친코〉가 미국 내에서 상당한 호평과 관심을 모았다. K콘텐츠와 K팝 열풍이 한국인, 나아가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캐시 박 홍은 책에서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으며 그때그때의 역사적 상황에 맞춰 적응하며 계속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봄, 미국 조지아주의 마사지숍에서 한국인 네 명을 포함한 아시아 여성 여섯 명이 백인 남성의 총격에 희생됐다. 아시아인 혐오를 중단하라는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그는 “2040년이 되면 소수인종이 다수가 되고 아시아계 이민자도 두 배로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미국이 다민족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변화가 백래시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당선됐고, 혐오범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백인이 인종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하고 방어적이 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있다. ‘백인의 눈물’이다. 이들은 인종주의를 제로섬 게임처럼 여긴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라는 구호에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ALM)”라는 구호로 반격한다. 이들은 인종적 억압을 인식하라는 외침을 들으면 자신들이 억압받는다고 느낀다. 캐시 박 홍은 이런 백래시에 맞서 흑인뿐만 아니라 아시안, 라티노(라틴계 미국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연대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은 ‘연성 판옵티콘’에 산다. 저항하거나 투쟁하지 않으면 심한 감시를 받지는 않을 수 있다. ‘얌전하게 있으면 여기서 살게 해줄게’라는 허락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4대째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조건부로 존재한다. 캐시 박 홍은 소수자들이 함께 연대함으로써 비로소 ‘조건부 실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낙태권 폐지로 임신중지 권리가 위태로워졌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신호이고 앞으로도 취약한 소수자들이 공격받는 상황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고,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하는 데 쓰지 말고 더 큰 권력에 대항하는 데 써야 합니다.”

북토크 현장을 찾은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너 필링스〉가 이들에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권력의 환심을 사려 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조언을 구하는 젊은 여성들을 향해 캐시 박 홍이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미 기성세대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있어요. 우리보다 더 선명하고 깊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요. 좀 더 과감해지세요.”

 

글_김다은 시사In 기자 (2022년 7월 13일 제773호)

 

※ 원본을 확인하려면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911 

 

겸손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소수적 감성’을 짚다 - 시사IN

“humbling” “overwhelming”. 캐시 박 홍 작가는 자신의 책 〈마이너 필링스〉(마티 펴냄)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겸손’과 ‘압도’라는 단어로 소감을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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