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사는 이진성씨는 2년 전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곳과 이웃해 있는 자치구였다. 주거 형태나 여건은 전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졌다. ‘도서관의 조건’이다. 이사하기 전에는 해당 구의 대표 도서관이 집에서 가까웠다. 규모는 그보다 작지만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이 하나 더 있었다. 이사 온 곳 근처에는 구립 어린이도서관이 하나 있지만 일반 단행본이 적어서 거의 가지 않는다. 주말이면 당연하게 이용하던 도서관의 공백을 실감하며 ‘도세권(도서관 인근의 부동산 가격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의미)’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의 저자 임윤희씨는 공공도서관에서 국회도서관 원문 DB에 접근하려 할 때 구별 차이를 실감한다. 국회도서관은 전국 각지의 대학·공공도서관 등과 협정을 체결해, 해당 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국회도서관 DB를 이용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 서비스 이용 정도를 보면, 어떤 도서관은 이용자가 많고 어떤 곳은 거의 없다. 후자의 경우 사서조차 이용 방법을 잘 몰라 안내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도서관 초청 강연을 가봐도 자치구별로 준비 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는 도서관을 교육에 비유했다. “도서관에 대해 얘기하기 어려운 게 교육과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각자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개인별로 다르다.”
서울시 서초구립양재도서관에는 1인 열람실 ‘나만의 서재’가 있다. ‘엄마의 방’은 도서관 회원 중에서도 ‘엄마’ 전용 공간이다. 시니어 스터디석은 다른 곳보다 전등 불빛이 밝다. 서울시 구산도서관마을에는 동네 주민이면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룸, ‘옛날 만화’를 볼 수 있는 ‘만화의 숲’ 코너 등이 있다. 반면 어느 도서관은 서가와 서가 간 간격이 좁아 휠체어는커녕 성인 두 명이 교차해 지나가기도 버겁다. 공간이 책으로만 빼곡히 채워져 여백이 없다. 특색도 없다. 임씨의 말처럼 도서관 경험은 제각각 다르다. 어디에 사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이 경험의 차이는 그저 운이고, 당연한 걸까? 우리는 거주지나 학력, 소득과 관계없이 공평한 공공도서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을까? 최근 서울시 25개 자치구 공공도서관의 거주지별, 학력별, 소득별 이용 행태를 분석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조금주 서초구립반포도서관 관장은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서 공개하는 개방형 데이터와 서울시 2020 서울서베이의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2020년 서울시민의 공공도서관 이용 현황을 조사했다. 공공도서관 예산, 운영 인력, 소장 장서 수, 연면적 등 도서관 운영의 중심 지표와 대출자 수, 대출 권수, 상호대차 서비스 제공 건수 같은 이용 실적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일부 변수들 사이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관련 정보가 ‘공공도서관 운영의 기본 지표와 이용 실적과의 상관관계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도서관 정보학회지〉 제52호에 실렸다. 서울시 공공도서관의 지자체별 격차를 비롯해 학력·소득과 이용 실적 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데이터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 관장은 이른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도서관을 두루 거쳤다. 지금 일하고 있는 서초구립반포도서관을 포함한 세 곳 모두 이용자가 많고 대출 건수가 많았다. 일반 대출보다 사서의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상호대차 서비스(이용자가 원하는 자료가 해당 도서관에 없으면 해당 구의 다른 도서관에 신청해 소장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이용 실적도 높은 곳이다. 팬데믹 초기에도 비대면 안심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지난해 도서관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같은 서울이라도 자치구에 따라 이용 실적을 비롯해 제공하는 서비스 면에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공도서관의 운영 지표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계기다.
2020년 12월 기준 서울시 소재 공공도서관은 서울도서관을 제외하고 총 187개다. 자치구별로는 강남구(14)에 가장 많고 성북구(13), 송파구(12), 구로구(11), 노원구(11) 순이다. 금천구·서대문구·용산구의 공공도서관 수는 각각 4곳으로, 서울에서 가장 적다. 인구 1000명당 도서관 면적은 종로구가 약 191㎡로 가장 크고 관악구(14㎡)가 가장 작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장서가 가장 많은 곳부터 차례로 나열하면, 종로구(119만여 권), 강남구, 강동구, 용산구 순이다. 가장 적게 소장한 도서관부터 거꾸로 올라가면 중구(20만여 권), 서초구, 금천구, 동작구 순이다. 인구수 대비 소장 장서 역시 종로구가 1인당 약 7.7권으로 가장 많고 관악구가 0.8권으로 가장 적다. 오른쪽 〈표〉를 보면 도서관 수, 예산, 장서, 대출, 인력, 면적, 봉사인구 수 등에서 자치구별로 편차가 나타난다.
공공도서관의 예산 현황이 눈에 띈다. 2021년 서울시 지자체의 공공도서관 예산 총액은 약 1672억원이다. 예산은 다시 인건비, 자료구입비, 운영비로 나뉜다. 인건비는 전체 예산의 약 60.8%이고 운영비는 30.3%다. 자료구입비는 전체의 8.76%다. 도서관에 투입된 예산을 보면 종로구(약 128억원), 강남구(약 117억원), 노원구(약 115억원), 마포구(105억원)가 상위권이고, 관악구(약 20억원), 중구(약 22억원), 금천구(약 30억원), 중랑구(약 43억원)가 비교적 하위권이다.
지역 격차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1인당 공공도서관 평균 예산이다. 서울시민 1인당 평균 예산은 약 1만7000원이다. 종로구(약 8만3000원)를 비롯해 마포구(약 2만8000원), 용산구(약 2만5000원), 노원구(약 2만2000원), 강남구(약 2만2000원) 등이 평균을 웃돌고 관악구(약 4000원), 중랑구(약 1만1000원), 성북구(약 1만1000원), 서초구(약 1만2000원)는 열악한 편이다. 종로구와 관악구의 차이는 20배다.
조금주 관장이 특히 주목하는 지표는 공공도서관의 신간 구매 예산(또는 연간 장서 증가 순위)이다. ‘해마다 얼마만큼 장서에 투자하는가’는 도서관에 대한 해당 지자체의 철학을 보여주는 지표다. “좋은 도서관은 신간 구매 예산이 많고 책을 많이 사는 도서관이다. 이제 공공도서관은 책을 ‘소장’하는 것보다 장서에 대한 ‘접근’에 주력해야 한다. 서울시처럼 땅값이 비싸고 도서관 면적 규모에 한계가 있는 대도시들은 특히 그렇다. 오래된 책을 무조건 많이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도서를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간된 지 오래되어 이용자의 관심이 멀어진 책들은 서가에서 골라내 공동 보존 서고로 보내야 한다. 요청이 있을 경우 상호대차 서비스를 활용하고 도서관의 서가는 매력적인 신간으로 교체하는 식이다.” ‘2020년에 장서 권수가 얼마나 늘었는가’로 보면, 강남구(7만2962권), 서초구(6만6669권), 강동구(6만3886권) 등의 장서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관악구(1만6103권), 금천구(2만595권)는 비교적 적게 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은 인력이다. 공공도서관의 품질은 사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남희 중랑구 대표도서관장이 최근 펴낸 〈다 함께 행복한 공공도서관〉을 보면 사서의 일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카운터를 지키며 바코드를 찍는 건 사서가 하는 일의 아주 일부분이다. “사서는 책을 빌려주고 책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며 동아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연결시킨다. 교육 강좌와 문화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물을 만든다. 커뮤니티의 중심이자 지역 시민교육의 거점으로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동아리와 프로그램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이며 그에 따라 사서의 업무량도 늘어나고 있다.” 사서 인력의 절대 수가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100명)이고 가장 적은 곳은 강북구(13명)다. 사서 1인당 봉사인구 수(주민 수)는 1915명으로 종로구가 가장 적고, 관악구는 2만5135명으로 가장 많다.
공공도서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데 비해 사서의 노동조건은 불안정한 편이다. 2020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공공도서관 민간위탁 운영과 도서관 사서 노동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청 소속 22개 직영 도서관을 제외한 서울 25개 자치구 공공도서관(167개) 대부분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의 사서(1640명) 중 비정규직 고용이 3분의 1이었다. 교육청 소속 도서관을 포함한(187개) 이번 조사 역시 정규직 비율이 59.76%에 그쳤다.
주민 1인당 대출 권수가 3권 넘는 지자체는 종로구(3.95권)가 유일했다. 그다음은 구로구(2.63권), 강동구(2.17권), 강남구(2.04권) 순이었다. 관악구(0.39권), 영등포구(0.8권), 중구(0.81권) 등은 한 권에 미치지 못한다. 같은 서울시민이라고 해도 경험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다르다는 게 확인됐다. 당연한 말 같지만 투입되는 자원이 많을수록 공공도서관의 이용 목적을 반영하는 대출자 수와 대출 권수가 증가했다. 예산이 많을수록,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을수록, 인력이 많을수록, 도서관 면적이 클수록 대출 권수와 대출자 수가 늘었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도서관 이용과 학력 및 소득의 상관관계다. 2020년 서울 서베이 가구조사에서 나타난 각 자치구의 학력 수준별 비율과 공공도서관 이용 현황을 비교 분석했더니 학력과 대출 실적(대출 권수, 대출자 수)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월평균 소득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위 〈그림〉 참조). 가구별 월평균 소득이 ‘200만~400만원’인 구간에서 ‘400만~900만원(중상위권)’ 구간으로 바뀌면서 대출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월평균 가구 소득이 중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공공도서관 이용이 활발하며 도서 대출도 적극적으로 일어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월소득이 900만원 이상인 최상위권은 중상위권에 비해 오히려 도서관 이용 실적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 결과를 본 임윤희 작가는 “저소득층이 도서관에 잘 안 온다는 의미다. 이 계층에게 도서관 이용을 권유하려면 중간계층보다 더 많은 공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라고 말했다.
위의 결과가 말해주듯, 비교적 도서관 이용에 적극적이지 않은 계층이 있다. 이들을 굳이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왜 필요할까. 도서관법 제7조에 따르면 “도서관은 국민이 신체적·지역적·경제적·사회적 여건에 관계없이 공평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반시설로서 공공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항이다. 신남희 중랑구 대표도서관장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누구나 차별 없이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근대 공공도서관의 이념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연구는 2020년 서울시 공공도서관 운영 현황과 이용 실적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대출 권수와 대출자 수, 상호대차 서비스 제공 건수로 이용 실적 지표를 제한했다. 대출 못지않게 강연이나 독서모임 등이 도서관의 주요 기능으로 자리 잡는 추세이지만 이를 도서관 실적에 활용하지는 않았다(문화체육관광부가 매해 2200개 넘는 도서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의 경우 독서 문화 프로그램, 독서 동아리 운영 및 활성화 실적 등이 주요 성과 지표다). 코로나19로 인한 공백 때문이기도 하고, 앞선 세 지표가 도서관의 활성화를 가늠하는 가장 기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금주 도서관장은 몇 개월간 엑셀 프로그램을 만지면서 좋은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인지 여러 차례 자문했다. 결국 ‘이용자가 많이 찾고 대출이 많이 되는 도서관’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1위와 25위의 격차를 봐달라고 당부했다. “현장에서 서비스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를 도서관 운영의 기본 지표와 이용 실적 데이터로 확인한 셈이다. 서울 안에서 이 정도 차이가 난다면 서울 외 지역은 이보다 더 심할 것이다. 학력과 소득, 거주지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인구 1인당 어느 정도의 여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기준선을 마련하는 게 격차를 해소할 방법이다.” 공공도서관 정책을 만들 때 이용 실적이 저조한 계층을 고려하고 자치구별 서비스 편차가 크지 않도록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22년 1월1일자 지면에 ‘공공도서관의 황금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세계의 위대한 공공도서관을 소개하는 이 기사는 실내의 자연광을 묘사하며 한때 어두운 구석에 채워져 있던 책이 지금은 ‘애플’ 매장과 견줄 만큼 밝은 선반에 진열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도서관은 방역의 최전선이다. 얼마 전부터 미국의 공공도서관이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배포 장소로 운영되면서 사서들이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 2016년 전국 1010개에서 2020년 1172개로, 그 수가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공공’이란 어쩌면 다 함께 자연광을 쐬는 일일지도 모른다.
글 임지영 기자(시사IN 2022년 3월 24일, 757호)
※ 원문을 보려면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046
거주지·학력·소득 따라 ‘도서관 경험’ 다르다 - 시사IN
서울시에 사는 이진성씨는 2년 전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곳과 이웃해 있는 자치구였다. 주거 형태나 여건은 전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졌다. ‘도서관의 조건’이다. 이사하기 전에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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