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은 왜 파시즘에 헌신했을까
[장정일의 독서일기] 〈파시즘의 심리 구조〉, 조르주 바타유 지음, 김우리 옮김, 두번째테제 펴냄
조르주 바타유는 20대 중반, 초현실주의 문인들과 교제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는 1928년, 사드의 유작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모두 속아넘어갈 〈눈 이야기〉(비채, 2017)를 자기 이름을 단 첫 책으로 선보였다. 세상에는 온갖 사상가가 있지만 자신의 저술 경력을 포르노그래피로 시작한 사람은 바타유, 이 사람이 유일하다. 그는 정치·경제·철학·종교·인류학·문학· 미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그 무엇과도 같지 않은 이질학(hètèrologie)을 완성했다.
포르노그래피로 시작했지만, 바타유의 진정한 출발점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한길사, 2002)에 영향을 받고 쓴 논문 ‘소비의 개념’(1933)이다. 이 논문이 확장된 것이 1949년 출간된 〈저주의 몫〉(문학동네, 2000)이다. 일반 경제, 즉 지구 전체 경제를 탐구 대상으로 삼은 이 책에서 그는 산업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에 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연이어 일어났는가를 해명하고자 했다. 바타유가 모스에게 계시받은 바에 따르면, 고대사회와 현대사회를 나누는 결정적 차이점은 잉여생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생산→절약·저축→더 많은 생산→절약·저축…’이라는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축적의 연결고리는 현대에 들어와서 찬양되기 시작한 행동 양식이지 고대인들에게는 비웃음거리였다고 말한다.
고대인들은 잉여(생산물)가 축적되지 못하도록 애를 썼다. 가장 쉬운 방법은 더 많은 생산이 아니라 애초부터 필요한 만큼만 생산(혹은 사냥)하고, 어쩌다 남은 잉여는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거나(증여)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래도 잉여가 남아돌았기에 고대인들은 현대인이 상상하기 힘든 초호화 사치를 발명했다. 많은 학자들은 이집트와 유카탄반도(멕시코)의 피라미드에서 실용적인 목적을 발견했지만, 바타유는 고대인이 피라미드를 축성한 이유를 그저 소비(사치)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는 축제와 전쟁도 소비를 위해 고안된 형식으로 보았는데, 종교도 고대인이 만든 소비 형식 가운데 하나다. 이를테면 중세까지 번성했던 가톨릭은 성당과 전례가 굉장히 화려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는 낭비를 죄악시하고 근검(부지런하고 검소함)을 새 기독교인의 신앙으로 삼았다. 기독교계 안에서 일어난 소비에서 근검으로의 전환을 일컬어 막스 베버는 마법에서 풀려난 것이라고 축성했다. 어이, 베버, 웃기지 마. 너는 우리가 어떤 마법에 걸려들게 되었는지 몰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생산→절약·저축→더 많은 생산→절약·저축…’이 인류에게 해방을 안겨준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경제적 유용성을 숭배한다. 물론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를 배척하고 분배를 중시하지만, 바타유는 그들 역시 ‘비생산적 소비(dépense improductive)’의 가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축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양산하지만, 바타유의 주장을 단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데팡스(dépense)’, 즉 탕진은 매번 그들의 출발선을 같게 만들어준다. 고대인의 증여 개념은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역겨운 관행으로 남아 있다.
파시즘에 헌신한 하위 이질성의 노동자
에로티시즘은 노동과 무관하며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탕진의 또 다른 형식이다. 에로티시즘의 핵심은 열정이며 계산은 거기에 발붙이지 못한다. 연인들이 “죽도록 사랑한다”라는 말을 예사로 내뱉는 것을 보면 사랑의 핵심도 열정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재벌 2세가 내세울 것 없는 백화점 여직원과 결혼했다면, 재벌 2세 입장에서는 자기 가문의 자본유출, 바로 탕진이다. 이런 일은 좀체 벌어지지 않는다. 축적이 최고선인 사회에서 사랑의 핵심은 계산이다. 이 때문에 현대인은 열정으로 자신을 탕진한 중세의 연인들과 달리,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 오늘도 방랑한다’라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잘못된 계산은 털어내고 새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번역된 〈파시즘의 심리 구조〉(두번째테제, 2022)는 ‘소비의 개념’을 쓰고 난 1년 뒤에 발표되었다. 이 글이 나올 즈음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슈미트, 발터 베냐민, 빌헬름 라이히가 차례대로 파시즘에 관한 책을 냈다. 바타유는 이 책에서 동질성과 이질성이라는 개념으로 전체 사회를 설명한다. 동질성은 생산에 몰두하는 사회, 즉 유용한 사회의 동의어이며, 이질성은 동질성으로 환원 불가능하고 동화 불가능한 것을 뜻한다.
이질성은 두 개의 층위로 나뉘어 있다. 예언자·미치광이·부랑자·시인 같은 개별인은 물론이고 하층민과 노동자는 하위의 이질성에 속한다. 하층민·노동자는 생산노동의 측면에서는 동질성의 사회에 참여하지만 그 밖의 부분에서는 철저히 배제된다. 동질성의 사회는 하위의 이질성을 억압하기 위해 상위의 이질성을 필요로 하는데, 왕과 군대가 여기에 속한다. 왕은 그 자신도 인간이면서 항상 자신을 인간 아닌 것으로 표상한다는 점에서 이질성이다(왕의 얼굴은 심지어 ‘용안’이며 그가 앉는 의자는 ‘용상’이라고 한다). 그는 신과 동일시된다. 다음으로 군대는 보편적인 교육이 인간적이라고 학습시켜온 모든 가치를 묵살한다는 점에서 이질성이다(보편적인 교육은 ‘약자 보호’를 가르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지만, 군인의 행동이나 가치 규범은 절대 ‘약한 적’을 보호하지 않는다). 군대는 왕에게 복속된다.
파시즘은 자유주의 세계에 나타난 이질성이다. 파시즘은 이탈리아어로 두체(영도자)이고, 독일어로는 퓌러(총통)라고 하는 왕을 가진다. 그리고 무솔리니와 히틀러라는 두 왕은 테러 집단 즉, 자신에게 충성한 군대를 갖고 파시즘 운동을 시작했다. 두 나라(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이라는 이질성이 수용된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의 상층부와 하층부가 동일하게 그 이질성에 환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의 기업들은 생산 일변도의 사회에서 자신들이 누리는 개별적 자유가 자신들을 위태로운 순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더 많은 생산을 통제하거나 처분할 수단이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사회주의, 나아가 정복을 통해 과잉생산을 소모해줄 파시즘을 반겼다. 반대로 노동자와 하층민에게 동질성 사회 속에서 출현한 이질성은 전복(혁명)을 뜻했으므로 그들이 파시즘에 헌신한 것은 당연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에 파시즘은 분열하는 동질성 사회 속의 여러 계급을 통합했다. 하위의 이질성을 이루는 노동자와 하층민은 초기 파시즘 운동에서 전복성을 보았으나, 원래 상위 이질성은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이 사명이었기에 그들의 기대는 배반당했다.
글 장정일(소설가)
※ 원본을 보려면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947
[독서일기] 노동자들은 왜 파시즘에 헌신했을까 - 시사IN
조르주 바타유는 20대 중반, 초현실주의 문인들과 교제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는 1928년, 사드의 유작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모두 속아넘어갈 〈눈 이야기〉(비채, 2017)를 자기 이름을 단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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